문화산책

전홍진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ft. 예민성 테스트

신생대유인원 2024. 2. 24.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두말할 것 없이 내가 매우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명확했던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랜 세월 두통에 시달렸고 사람들이 많은 장소와 소음을 병적으로 기피하면서도, 이를 앙다무는 습관 때문에 어금니가 다 마모되고 재채기와 젖은 머리카락을 끔찍이 싫어하면서도 난, 그것이 '예민함' 때문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눈치를 보며 행동한 것이 오히려 배려와 아량으로 받아들여져, 타인인 그 누구도 날 예민하다고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내가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살게 된 데에 한몫한 듯싶다. 

예민함은 영어로는 sensitive, '민감함'을 뜻한다.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예민함이 공식적인 의학 용어나 질병명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생긴, 보통의 사람들도 꽤 높은 확률로 지니고 있는 인간의 다양한 특성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다루어내지 못할 경우 그것은 중병에 걸린 것 이상으로 삶을 괴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예민함을 자각하고, 잘 다루어 내며, 좋은 방향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예민함으로 인해 표출되는 증상은 건강에 대해 과한 염려, 수면 장애, 소음에 대한 민감함, 자해, 자살 충동 등으로 그 양상과 경중 또한 다양하다. 이렇듯 예민함으로 인한 문제는 단지 기분이나 심리상태에서 그치지 않고 신체 증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땐 신체 감각 자체에 집중하지 말고 그것이 자신의 예민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지하고 직면해야 한다. 모든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정확한 진단과 자각에서부터 시작되니 말이다.


문제를 직면한 후엔, 현재에 집중하고 좋은 표정과 말투를 훈련하며 자신에게 안전기지가 되는 사람을 만나 자존감을 관리하는 등으로 예민함을 다스리고 유머나 승화, 이타주의 등의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함으로써 예민함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책에선 자신의 예민성을 오히려 성공의 발판으로 삼은 스티브 잡스, 아이작 뉴턴, 윈스턴 처칠 등을 사례로 제시하고 있는데, 주목할 점은 이들이 약점으로서의 예민성을 극복한 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강점으로 전화위복 시켰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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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트라우마로 환공포증에 시달렸던 스티브 잡스는 휴대전화의 수많은 버튼을 없애고 터치식 스마트폰으로의 혁명을 이끌었고, 깊은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처칠은 1953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모두가 위의 위인들처럼 자신의 예민성을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닐테지만 적어도 예민성이 극복 불가능하거나 혹은 인생에서 오로지 약점으로만 작용하는 골칫덩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위의 사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예민성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그것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에 침투해 있는 과제라는 것을 알려 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삶의 다양한 문제들과 그의 해결과 극복까지를 여러 사례를 통해 다루었다. 

더불어 일상에서 예민성을 제어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들(예를 들면, 걱정 거리를 리스트로 정리한다거나 에너지를 유지하는 방법들)까지도 소개되어 있어 실제 예민성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 책이다. 

'지피지기'하면 '백전백승'까진 못하더라도, 이유도 모른 채 늘 패배자와 같은 무기력함을 안고 살아갈 일은 없지 않을까. 


다음은 책에 소개된 '매우 예민한 정도' 를 평가해 볼 수 있는 문진표이다. 일부를 소개한다. 

배우자가 한 사소한 말에도 화가 난다 /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답답하다 / 층간소음에 민감하다 / 끔찍한 영상을 보지 못한다 / 드라마,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칠까 늘 걱정한다 / 큰 병이 있지 않을까 불안하다 / 항상 긴장 속에 사는 것 같다 / 감정 기복이 심하다 / 쉽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배우자가 바람을 피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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