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넷플릭스 추천 자연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

신생대유인원 2024. 2. 19.

 

문어는 그 자체로 놀랍다
문어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선 이미 알려진 바가 많다. 인간이 보기엔 머리와 다리로만 이루어져 '두족류'라 분류되는 이 무척추동물의 8개의 다리에는 약 3억 개의 신경세포가 분포한다.

그러니 머리뿐 아니라 다리에까지 뇌가 있는 꼴이다. 이런 문어이니 문제를 풀고 답을 기억하며 다른 대상을 모방해 문제 해결 방법까지 빠르게 배운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문어의 머리처럼 보이는 부분은 사실 몸통이다. 문어 입장에서 두족류란 분류는 매우 섭섭할 일이다.

넷플릭스 추천 자연 다큐 &lt;나의 문어 선생님&gt;


또 피부에는 몇 백만 개나 되는 색소포가 있어 위험이 닥쳤을 땐 몸의 색깔뿐 아니라 질감까지도 주위 환경과 똑같이 바꾼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흡사 휴대전화 액정화면과도 같다고 했으나 사실 질감까지도 바꾸는 그 능력은 그 이상인 듯 싶다.

강력한 빨판으로 병뚜껑을 열 수 있는가 하면 뼈가 없으니 아주 작은 틈새만 있어도 빠져나올 수 있고, 이런 방식들이 통하지 않을 땐 적의 눈을 얼얼하게 만드는 먹물을 구름처럼 내뿜기도 하니 가히 탈출의 귀재라 불릴만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은 이런 문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잘 쫓아가다 보면 사실 이건, 한 인간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남자가 삶의 여정 중 지친 영혼과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바다에 이른다. 아릅답지만 차가운 이 바닷속을 자유로이 헤엄쳐 다니며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느끼는 남자, 차갑던 바다는 남자의 뜨거운 가슴에 굴복하듯 신비롭고 경이로운 모습을 선사하며 남자를 매료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마주친 한 마리의 암문어. 남자는 직감한다. 그녀에게 무언가 특별함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눈동자로 남자를 주시한다. 경계를 조금씩 풀고는 호기심이 생겼다는 듯 다리로 남자의 피부를 더듬는다. 팔을, 얼굴을 쓰다듬듯 매만지던 문어는 여러 날이 지난 어느 날 남자의 품에 안기기도 한다. 매일 같이 문어를 보러 바다로 향하는 남자의 머릿속은 이제 온통 문어뿐이다. 그렇게 남자는 문어와 소통하며 300일이 넘는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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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속 문어는 자연만큼이나 다채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놀라운 속도로 몸의 형태를 바꾸고, 조개껍질로 자신을 위장한다. 물고기 떼가 나타나자 배가 고프지 않은 문어는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물고기들과 장난을 치기도 하고 유려한 몸놀림으로 헤엄을 치며 두 다리만을 이용해 직립 보행자 행세까지 한다.

하루는 천적인 파자마 상어에게 쫓기게 되자 문어는 바로 상어의 등에 올라타는 기지를 발휘한다. 등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상 결코 문어를 사냥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상어는 결국 먹잇감을 포기하곤 돌아가고 마는데, 이런 문어의 모습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넘지 못할 선이 있음을 깨닫다
이런 문어와 교감하며 남자는 기쁨이라 표현하기엔 부족할 정도의  환희를 느끼지만 결코 넘지 못할 선이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우리가 문어를 '머리와 다리로 이루어진'생물로 아는 것만큼이나 그녀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는 가깝고도 먼 것이었다. 

마음만은 언제나 문어 곁에 있지만 산소통 없이 들어간 바다에서 남자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해가 지면 어둡고 차가워진 바다를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게 문어의 삶이고 또 남자의 삶이었다. 

하루는 상어의 공격을 받아 문어가 다리 하나를 잃게 된다. 상어가 비틀어 찢어낸 다리에선 피의 냄새가 진동을 했다. 문어는 고통에 시달리고 지켜보는 남자 역시 고통스럽다. 그러나 놀랍게도 문어는 일주일 만에 작지만 온전한 형태의 새 다리를 회복해 나타난다. 

절대 치유할 수 없을 것 같던 상처도 아물 수 있음을, 결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던 파괴도 회복될 수 있음을 그에게 몸소 말해주듯 말이다. 남자는 이제 달라진 자신을 느낀다.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알게 되고, 주위의 모든 것들을 새롭게 보기 시작한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 더 먼 곳을 더 넓은 곳을 바라보게 된다.


문어의 짝짓기는 죽음을 전제로 한다. 각자 살아가던 암, 수는 짝짓기 후 모두 죽음을 맞게 되는데 수컷은 짝짓기가 끝나는 즉시, 그리고 암컷은 먹지도 자지도 않고 알을 지키다 알이 부화를 마치고 나면 죽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보호해 줄 단단한 껍질도 힘을 합쳐 적과 함께 싸울 동료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문어의 생존 전략이 뛰어난 두뇌였듯 이 또한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물일 것이나 이 지능 높은 생물의 생이 번식의 도구로써 끝난다는 것이, 나는 너무도 서글펐다. 인간의 편협한 시각에서 나온 판단이겠고 문어를 보내기 싫은 마음에서 생긴 억지인 줄은 알지만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사냥도 하지 않고 굴 속에서 오직 알을 지키는 일에 충실히 온 힘을 쏟는 문어를 보며 남자는 문어의 생이 다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지키듯 더 자주 문어를 보러 가며 무언가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다. 그 고민과 갈등은 점점 깊어가지만 그래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문어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그녀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 사랑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그저 자연과 닮아가기로 한다. 자신이 삼킨 슬픔을 그렇게 승화시키면서 말이다. 


우리도 다종다양한 생물 중 하나
바닷속은 무질서한 듯 어지럽지만 하나하나가 더없이 소중하다. 가재가 꼬리를 접었다 폈다 헤엄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불가사리들이 바닷속에서 그렇게나 빨리 움직일 줄이야, 해안가에서 사체나 구경하던 나로선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육지의 숲 못지않은 울창한 다시마 숲이며 빛을 내는 해파리 떼 등 정말이지 자연은 지루할 틈이 없고 내내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이런 자연 속 생물들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지구를 나누어 살아가는 동료 중 하나라고, 그렇게 인식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문어가 떠난 후에도 그는 매일처럼 바다를 찾고 문어의 흔적을 추억한다. 그렇게 아들과 함께 하던 어느 날, 그의 아들은 새끼 문어 한 마리를 발견한다. 아마 그녀의 5십만 개의 알들 중 생존에 성공한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 작은 문어 한 마리가 그를 위로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도 이젠, 결코 미물이 아닌 그 존재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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