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지능> 최재천 ft.대한민국 과학축제

 

지난봄, 대전에서 열린 대한민국 과학축제에 다녀왔다. 사람 붐비는 곳을 싫어하는 내가 축제 같은 것에 솔깃할 리 없지만 축제 기간 중 최재천 교수님의 강연이 있다고 하니 눈이 번쩍 뜨여 부리나케 사전예약을 하고 다녀온 것이다. 

9살 아들과 함께 가기 위해 학교에 체험학습신청서를 제출하고 사전예약을 하고 그렇게 요란을 떨고 간 것이 무색하리만큼 그날 강연장에는 빈좌석이 꽤나 있었다.

강연 제목은 '다윈으로 이야기하는 인류의 미래와 진화'였는데, 교수님의 강연이 "대한민국은 다윈 후진국이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걸 듣자마자 난 강연장 내 그 빈좌석들의 의미를 그리고 그 의미의 실체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다윈 후진국
'후진국'이라는 말 자체가 지닌 부정적 의미 때문에 교수님의 말이 자칫 비난이나 질타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 말에서 내가 느낀 것은 오히려 교수님의 대한민국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무한한 애정이었다. 

생물의 진화 과정을 자연선택에 의해 설명한 찰스 로버트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을 넘어 철학, 윤리학, 종교, 정치학, 경제학 등의 학문뿐 아니라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문학, 미술, 음악 등의 분야에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교수님의 저서 <다윈의 사도들>에서도 알 수 있듯 수많은 세계 석학들이 지금도 다윈을 연구하고 있으며 '다위니즘', '다윈주의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윈의 진화론은 범학문적 이론일 뿐 아니라 19세기 이후 인류의 역사를 설명하는 하나의 세계관, 사상 체계인 것이다.

반응형

그런데, 이런 다윈이 대한민국에서는 찬밥 신세다. 다윈을 이해해야 우리의 존재를, 역사를, 삶을 근원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만 더 나아갈 미래가 있다고 믿는 학자로서 최재천 박사님에게 대한민국의 상황은 격하게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간 대한민국에 다윈을 소개하고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최재천 교수님의 여러 노력들이 있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등을 우리말로 완역하는데 오랜 시간 애쓰신 것을 비롯해 진화론 관련 여러 저서를 집필하셨고 다윈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한 강연 활동도 멈추지 않으셨다.

이 날 소개된 교수님의 저서 <다윈 지능>과 <다윈의 사도들>은 다윈의 이론과 다윈 이후 진화론에 대한 여러 연구들에 대해 쉽게 풀어쓴 책으로 일반 대중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다윈 지능>에는 우리가 그간 들어온 자연선택 외 성선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진화론에 대한 개괄적 설명은 명쾌하고 다윈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들을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전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윈 지능> 책은 사실 이날 질의응답 이벤트 상품으로 받은 것이다. 무려 친필 사인본으로 말이다. 순전히 아들 덕이었다. 상품으로 내걸린 책을 보고 꼴딱꼴딱 침을 삼키는 엄마를 옆에서 지켜보던 아들은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질문 기회를 얻어냈던 것이다. 

책을 부둥켜안고 있는 나에게 "좋아?, 진짜 좋아?, 얼마나 좋아?" 같은 질문을 그날만도 몇 번씩 반복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아이가 원하던 걸 사준 날 기뻐하는 아이를 수도 없이 확인하고 싶어 하던 내 모습이 겹쳤다.

고마워, 아들. 존경해요, 박사님. 나에겐 꿈같은 날이었다. 

 

함께 읽기

자연과학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

<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 송길영 ft.핵개인이란?

알쓸신잡 출연, 철학하는 과학자 김상욱 <김상욱의 과학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