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일본 원작, 추천 힐링 영화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신생대유인원 2024. 2. 20.

 

재미있는 영화는 많다. 가끔은 깔깔 웃게 만들고 때로는 감동에 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수많은 영화들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나에게 그런 재미있는 영화 중 하나가 아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영화이다. 좋아서 늘 곁에 두고 싶고, 평생 어느 것에도 중독되어 본 적 없는 내가 이런 게 중독인가 싶게 반복해 떠올리게 되는 영화이다.

일본 원작&#44; 추천 힐링 영화 &lt;리틀 포레스트&gt; 임순례 감독


아주 심기의 시작
임용고사를 준비하며 서울 생활을 하던 혜원(김태리)은 어느 겨울 몸도 마음도 지쳐 집으로 돌아온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버티던 수험 생활은 혜원을 늘 허기지게 만들었다. 친구 은숙(진기주)의 왜 돌아왔냐는 질문에 배가 고파 돌아왔다는 혜원의 답은 결코 빈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낸,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으로 돌아왔지만 혜원의 마음 한 구석은 어쩐지 편치가 않다. 엄마가 떠나고 홀로 남겨졌던 그곳에는 엄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그 흔적들이 엄마에 대한 기억을 선명하게 불러내 계속 혜원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아주 심기란? 발아된 양파 싹을 정식으로 본밭에 옮겨 심는 과정으로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아주 심는 것. 

 


그곳에서 만난 어릴 적 친구 재하(류준열)는 홀로 지낼 혜원을 위해 강아지 '오구'를 선물한다.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위로가 되는 법이야" <리틀 포레스트>/ 재하

자신의 귀향이 곧 서울 생활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 같아 계속 마음이 무겁지만 이곳 생활에서 느끼는 온기에 혜원은 조금씩 젖어든다. 그리고 그렇게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자, 혜원은 밭에 나가 새 새명들을 심고 가꾸기 시작한다.

싹이 트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는 그 모든 과정이 결국 기다림의 끝에서 얻어지는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사실, 그 사실을 자신이 모르고 있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는다.

"기다려. 기다릴 줄 알아야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어" <리틀 포레스트> / 혜원 엄마

반응형

엄마의 작은 숲
혜원이 살던 이곳은 사실 아빠의 고향이다. 어릴 적 병든 아빠의 요양차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인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엄마는 다시 도시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고, 엄마가 떠나던 날 남긴 편지에 그 이유가 적혀있었지만 그때의 혜원은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를 이곳에 뿌리내리게 하고 싶어서야. 이곳의 흙냄새, 바람, 공기를 기억한다면 후에 어떤 일을 겪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리틀 포레스트> / 혜원 엄마

하지만 돌아온 혜원은 이제 천천히 자연스럽게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에 대한 이해이기도 했다. 자연과 요리와 혜원에 대한 사랑이 엄마의 작은 숲이었듯 혜원 역시 이곳에서 그녀만의 작은 숲을 살뜰히 가꿔나갈 힘을 얻어 가고 있었다.


겨울을 견딘 양파
이곳에는 그녀가 살던 도시와는 다른 자연의 규칙들이 존재한다. 노지에서 햇볕을 듬뿍 받고 자란 토마토는 그냥 던져놔도 후년에 다시 싹을 틔울 수 있고, 가을에 심어 겨울 추위를 견뎌낸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는 더 달고 단단하다. 고난과 시련은 실패가 아닌 경험을, 좌절이 아닌 성숙을 만들어 내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6월의 감자빵이 그렇게 맛있었던 건 엄마의 요리 솜씨 덕이 아니라 기다림 끝에 제철을 맞은 햇감자의 맛이 좋아서임을 깨닫게 되고, 때가 될 때를 기다려 그렇게 단단해진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가꾸어 갈 힘이 있다는 것 또한 혜원은 알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도망치듯 떠나온 서울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도시로 돌아갔던 혜원이, 자신을 아주심기할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꿈을 꾸듯 눈을 감고
꽃잎으로 장식한 봄날의 파스타, 삶은 소면 대신 오이채로 만든 여름 콩국수, 자연의 색을 입힌 시루떡과 자연 바람에 말린 곶감, 꽁꽁 얼은 손을 불며 먹는 겨울 수제비 그리고,

빗물이 흘러내리는 처마와 다슬기 잡던 여름밤의 냇가. 영화는 이 외에도 눈을 감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촉촉이 젖어드는 수많은 명장면들을 선사한다. 

'으스스한 바람 그리고 함께 마실 사람'이 막걸리 최고의 안주이듯, 인생에서 가끔 이 영화를 안주 삼는다면 우리의 지친 삶에도 포근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함께 읽기

 

넷플릭스 추천 자연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

문어는 그 자체로 놀랍다 문어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선 이미 알려진 바가 많다. 인간이 보기엔 머리와 다리로만 이루어져 '두족류'라 분류되는 이 무척추동물의 8개의 다리에는 약 3억 개의 신경

garden-to-jungle.tistory.com

 

추천 다큐 <미니멀리즘 :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한다는 의미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는 어느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평소 군더더기 없는 삶을 살고자 나름 노력하는 나로선 제목에 먼저 끌렸고 다음엔

garden-to-jungle.tistory.com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크 샌댈 ft.트롤리 딜레마

어제 아침 식사 중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질문이 있다며 나에게 물었다.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길은 2군데뿐인데, 한 군데에는 다섯 사람이 있고 다른 한 군데에는 한 사람이 있어. 엄

garden-to-jungle.tistory.com

반응형

댓글

💲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