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명칭은 구운란, 구운계란 혹은 맥반석 계란, 그러나 우리 집에선 까도 똑같은 색깔인 계란으로 통한다.
맛있었단 기억만 있고 정확한 이름에 대한 기억은 없던 4살 딸아이가, 또 사달라는 얘기가 하고 싶어 애써 지어낸 이름이 우리 집에선 나름 애칭이 된 것이다.
삶은 계란은 먹지 않는 9살 아들도 잘 먹고 아침식사로도 허기질 때 간식으로도 좋은 구운계란을, 그런데 그렇게 매번 사서 먹고 있자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유통기한!
생계란의 유통기한이 보통 1달 정도인 반면 삶은 계란은 그보다 훨씬 빨리 상해버린다. 그런데, 똑같이 익힌 구운계란은 왜 유통기한이 이리도 길단 말인가. 제조일로부터 한 달이라지만, 난 냉장 보관으로 2달까지도 먹어봤다. 그럼 혹시 방부제 처리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구운계란의 경우 고열에서 아주 오랜시간 조리하기 때문에, 그 사이 달걀 표면의 숨구멍이 막혀 버리고 수분 또한 많이 증발되어 상대적으로 부패가 잘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몰랐을 때보단 마음이 놓였지만 '이왕 이리된 거 내가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밥솥 구운계란
1. 냉장고에서 꺼낸 계란은 상온에 1시간 이상 두어 온도를 떨어뜨린다. 갓 꺼내 차가운 계란을 바로 고온에서 조리할 경우 심한 온도차 때문에 계란이 깨져버리기 쉽다.
스텐 소재의 삼발이를 사용하면 밥솥이 오염, 훼손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하나 우리 집엔 실리콘 삼발이뿐이었다. 내열온도가 얼마인지 장담할 수 없어 일단 삼발이는 생략.
2. 밥솥에 키친타월을 4겹으로 깔고 상온의 계란을 올린 후, 물은 종이컵 사이즈로 2컵 부어주었다. 10인용 밥솥에 계란은 13개, 물은 계란의 1/4 지점 정도까지 차올랐다.
3. 만능찜 기능으로 70분 설정하고 취사.
뭐 이리도 간단한가 싶게 끝이 났다. 아니, 사실 기다리는 일이 남았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70분이면 꽤 긴 시간이고, 그 시간 동안 전기밥솥이 돌아가면 전기세가 얼마인가. 시판 구운란이 방부제를 넣는 건 아니라는데도 굳이 이걸 직접 만들고 있는 게 잘하는 짓인가. 그래도 생계란 값이 구운 계란보단 싸니 남는 장사 아닌가'
등의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느라 지루하진 않았다.
우리 집 쿠쿠가 찜이 완성되었다고 알리기가 무섭게 잠금을 해제하고 열어 봤다. 깨진 게 1알. 나머진 온전하다. 표면에 갈색 점들이 좀 얼룩얼룩하다는 것 외엔 생계란과 아무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만, 꽤 많던 물이 모두 없어지고 바싹 말라있다는 게 놀랍다.
굉장히 뜨거워 잠깐 식힌 후 까보니,
오! 꽤나 그럴싸하다.
진한 캐러멜색이 아니라는 게 오히려 더 정직해 보인다. 구운 냄새가 확 끼치는 게 확실히 삶아서 익힌 계란과는 달랐다. 눌러보니 탄력도 있고, 맛도 좋다.
소금을 넣지 않고 구웠으니 취향껏 소금으로 간을 조절할 수 있고, 안 그래도 생계란이 싼데 구워놔도 시판용 구운계란보다 훨씬 크니 가성비가 좋은 건 두말하면 잔소리.
이런 장점들을 나열하고 있자니, 남편 왈
"애쓴 보람을 찾으려고 장점을 짜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내 착각이지?"
한 가지 단점을 꼽자면 밥솥을 닦기가 힘들다는 점인데(역시 삼발이가 필요했던 것인가) 설거지 담당인 남편에겐 그 단점이 부각될 수밖에 없겠다는 점 인정한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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